여수 '최초 3도수군 통제영' 국가문화재 사적 지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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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최초 3도수군 통제영' 국가문화재 사적 지정하자

- 통제영 동헌 일대 유적, 국가문화재 지정 필요
- 여수는 이순신 장군 호국·충효 정신의 본고장
-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범시민운동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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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3도수군통제영 국가문화재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세미나 단체사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7주년을 맞이하여 ‘전라좌수영 겸 최초 3도수군통제영 국가문화재 지정 추진위원회(위원장 고효주)’가 주최한「최초 3도수군통제영 국가문화재 사적(史蹟) 지정」을 위한 학술세미나가 4월 28일 여수진남문예회관에서 열렸다.

 

이 학술세미나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경상, 전라, 충청 3도수군절도사로써 3도 수군을 지휘했던 여수 진남관과 동원 일대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해야한다는 의견이 토론을 통해 강력히 주장되었다.

 

추진위원회 고효주 위원장이 좌장으로, 노기욱 교수(호남의병연구소 소장)의 “국가지정문화재‘여수 전라좌수영 겸 3도수군통제영’사적 지정을 위한 제언” 주제발표에 이어 정현창 박사(전남대 문화유산연구소 연구원)의 “여수는 최초 3도수군통제영이었다!” 주제발표가 있었다.

 

이어서 박정명 (사)여수진남거북선축제보존회 이사장, 조미선 한국국학진흥원 사료조사원의 토론의견과 청중토론으로 예정보다 긴 2시간이 넘어선 진지하고 치열하게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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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세미나 주제발표 및 토론회 모습

 

주제발표자는 물론 청중토론자들까지 모두 최초 1대는 이순신, 2대는 원균, 3대는 다시 이순신, 이순신 전사 후 4대는 이시언 등 모두 여수가 본영(本營)인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3도수군통제사’이었기에 1593년부터 1601년 경남으로 이전하기까지 8여년동안 여수가 최초의 3도수군통제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데 의견일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3도수군통제영」이었다는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여수시민들이 별로 주장하지도 않고 스스로 ‘전라좌수영’으로 격하하는데 만족하고 있음에 대해서 서로 반성해야 한다는데도 의견이 같았다.

 

고효주 위원장은, “국가문화재 사적 지정 건의서를 지역 국회의원, 시.도의원 전원의 동의를 받아 대선기간 중에 대권 후보들에게 전달해 긍정적인 관심을 얻었다. 우리지역의 국방유적지인 최초 3도수군통제영 국가문화재 사적(史蹟) 지정 추진은 지금부터 시작이며,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범시민운동으로 확대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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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 겸 최초 3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 국가문화재 사적 지정 건의서

 

이 건의서는,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끈 국난극복의 본거지이고,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의 발원지일 뿐아니라 417년간 조선의 바다를 지켜온 진남관 주변 3도수군통제영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등 국방유적지 일대를 국가문화재 사적(史蹟)으로 지정하여 체계적으로 복원해 호국문화재로 보존함으로써 여수가 호국의 성지임을 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국난극복 역사의 교육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라좌수영 겸 최초 3도수군통제영 국가문화재 지정 추진위원회」는 사단법인 여수종고회가 주축이 되고, 사단법인 여수시문화원, 사단법인 여수진남거북선축제보존회가 함께 참여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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