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 “6.25참전 학도병의 날” 정부기념일 지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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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 “6.25참전 학도병의 날” 정부기념일 지정하라!

「전국최초 혈서 자원입대 전남지역 학도병 6.25출전 73주년 기념식」개최

- 국가는 학도병들의 충혼을 미래세대에 전승시켜야 할 책임 있음을 각성하라!

- “6.25참전 학도병의 날” 정부 기념일 지정을 촉구하는 목소리 높여


전국최초 혈서 자원입대 전남지역 학도병 6.25출전 73주년 기념식 모습.jpg

▲ 전국최초 혈서 자원입대 전남지역 학도병 6.25출전 73주년 기념식 모습


북한의 6.25남침으로 조국이 적화될 위기에 처했던 73년 전 1950년 7월 13일, 나이 어린 전남지역 중학생 183명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혈서를 쓰고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던 날을 기리는, 전남지역 학도병 출전 73주년 기념식이 여수에서 개최되었다.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회장 고효주)는 “6.25참전 학도병의 날” 정부 기념일 지정을 촉구하는「전남지역 학도병 6·25출전 73주년 기념식」을 73년 전 학도병들이 자원입대했던 바로 ‘그날 그 시간’, 7월 13일 2시, 여수진남문예회관에서 개최했다.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회장 고효주)가 주최하는 이 기념식에는 생존학도병 및 유가족, 6.25 및 월남전참전 등의 국가유공자, 보훈·안보단체, 군 장병, 예비군지휘관, 여수공고, 여수중, 구봉중 학생 및 교육장, 학교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전국 최초로 혈서를 쓰고 6.25전쟁에 자원입대했던 전남지역 학도병의 최초전투인 화개전투일(7월 25일)을 “6.25참전 학도병의 날”로 제정하고 정부 기념일로 지정해 줄 것을 촉구하는 범국민적 청원운동에 돌입할 것을 선언하는 청원서가 낭독됐으며, 전체 결의로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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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화속으로'의 원작인 '학도병아 잘 싸웠다' 책 저자 김만규 학도의용군 6·25참전기념사업회 회장이 청원서를 낭독하고 있다.


학도의용군 6·25참전기념사업회 김만규 회장은 청원서 낭독을 통해 "'피 묻은 군복'의 의미와 함께 '피 묻은 학생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남지역학도병 출전 73주년 기념식'을 기점으로 '6·25참전 학도병 최초의 전투'인 화개전투일 7월 25일을 '6·25참전 학도병의 날' 정부 기념일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면서 "이를 위해 범국민적 청원 운동에 돌입할 것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전쟁 발발 73년이 지났지만, 지금부터라도 위기에 처한 조국 수호를 위해 자진입대, 청춘을 던져서 나라와 국민을 지켜낸 어린 영웅들, 전국의 수많은 한국전쟁 참전 학도병들의 희생과 헌신, 푸르디푸른 충혼을 모든 국민이 함께 기억하고 예우하면서 미래세대에 전승시켜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정부 당국은 헤아려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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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도병과 유가족께 표창장과 감사패를 전달하는 모습


이날 기념식은 정기명 여수시장과 김영규 여수시의회 의장, 서금렬 여수교육지원청장, 최정길 전남동부보훈지청장, 김만규 학도의용군 6·25참전 기념사업회장(포항 학도병 회장), 이형남 호남호국기념관 관장, 제31보병사단 관계자, 김하진 국민의힘 전남도당위원장 등이 참석해 지원을 약속했다.

 

참석자들은 군번도 무기도 없이 조국 수호의 목적으로 혈서를 작성하고 자진 입대한 학도병에 대해 감사의 거수경례를 통해 숭고한 뜻을 기렸다.

 

기념식은, 73년 전 1950년 7월 13일 오후 2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군번 없는 어린 용사들의 훈련과정, 북한군 최정예 6사단과 마주친 화개전투 등 영상물 상영과 학도병 추모를 위한 경과보고가 숙연한 가운데 진행됐다.


학도병과 유가족이 표창장과 감사폐와 꽃목걸이를 받는 모습1.jpg

 

참전자 무공훈장 전수에 이어 국가보훈부장관 표창장 전수, 감사패 증정, 학도병 꽃목걸이 및 기념품 증정, 학도병께 드리는 헌시 및 안무, 청원서 낭독 및 채택, 여수시립합창단의 '전선야곡' 공연에 이어 31사단 장병과 참석자 전원의 ‘전선을 간다,’ ‘전우여 잘가라’ 합창, 만세 삼창이 이어졌다.

 

고효주 선양회장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 수호를 위해 혈서를 작성하고 자진 입대해 목숨을 바친 전남의 어린 영웅들과 또 전국의 수많은 6·25 참전 학도병의 희생과 헌신이 '6·25참전 학도병의 날' 정부 기념일 지정으로 되살아나는 그날을 위해 온 힘을 다 바칠 것을 다짐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고 회장은 “학도병 가족찾기 및 추가 유해발굴, 학적부 제적 상태 수정 후 명예졸업장 수여, 백서발간, 다큐멘터리 영화 및 극영화 제작 추진 등 해야 할 일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라고 계획을 말했다.


전국최초 혈서 자원입대 전남지역 학도병 6.25출전 73주년 기념식 모습1.jpg

 

한편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 13일 입대할 의무가 없었던 여수와 순천, 광양, 보성, 고흥, 강진 등 전남 17개 중학교 15세~18세의 학생 183명은 '조국 수호'의 혈서를 쓰고, 순천에 임시 주둔하던 국군 15연대에 자원입대했다.

 

이들은 6개 소대의 독립 학도 중대로 편성돼 9일간의 기초훈련만 받은 후 열차를 타고 전선에 투입되어 뒤늦게 지급받은 M1 소총의 실탄사격 한 번도 못 해본 상태로 국군과 경찰이 퇴각한 화개장터 건너편 야산 진지에서 7월 25일 오전 7시 진주 점령을 위해 섬진강 변을 따라 통과하려던 인민군 최정예 6사단 선봉 대대를 12시간 지연시켰으나 70여 명이 전사했다.

 

학도병들의 이 희생으로 인해 국군의 “낙동강 최후방어선” 구축 이전에 방어병력이 전혀 없는 하동, 진주, 마산을 거쳐 임시수도 부산을 일거에 함락할 목적하에 파죽지세로 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으로 향하던 북한군의 진로를 1주일 이상 지연시켜 결국 부산을 방어케 한 큰 공을 세웠다.

 

2007년 4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당시 단장 박신한 육군대령)은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지역에서 전남지역 학도병들이 이 지역에서 북한 정규군과 최초로 접전한 기록이 있어 발굴한 결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유해 10구가 은제 회중시계, 십자가, 교복 단추와 만년필, 잉크병 등 유물도 함께 나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박신한 단장은 당시, “참 마음이 아팠다. 이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잘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학도병 발굴현장에서 발견된 십자가가 기억에 남는다. 조국을 향한 학도병의 애국심과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십자가에 의지했을 학도병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스스로 자원입대해 화개전투, 진주촉석루전투, 진동사수전투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산화하신 이 지역 학도병들의 참전 사실이 아무런 관심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 고효주 회장이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를 조직하고, 2014년 7월부터 지금까지 10년 째 매년 기념식 거행 및 각종 선양사업을 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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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학도병 화개전투 유해발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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